“긍정의 힘으로 조건 빼니 행복 가득”

이재룡 2016-12-18 (일) 19:44 7년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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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하는 결혼’ 그림에세이 펴낸 배성태·윤소리 부부 

‘왜 이렇게 예쁘지? 밖에서는 예쁘지 마’, ‘곤히 자고 있는 너를 보면 포근해져’, ‘결혼하니 살찌네. 살찌면 옷 살 수 있으니 이득.’

‘닭살스러운’ 대화가 적잖이 간지러운데 손에서 책을 뗄수가 없다. 계속 보고 있자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림 에세이 <구름 껴도 맑음>은 일러스트레이터 배성태(29) 씨가 아내 윤소리(27) 씨와 반려고양이 망고, 젤리와 함께하는 자신의 신혼생활을 담은 작품이다. 배 씨는 문득 소중한 부부의 일상을 붙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사진으로 남길 수 없던 일상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연재된 작품은 11월 책으로 출간됐다. 누리꾼들은 작품에 대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 ‘이런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 ‘남자친구에게 선물해줘야겠다’는 등의 반응. 신혼부부 사이에선 일종의 지침서로, 연인들 사이에선 결혼 로망을 부추기는 희망서로 통한다.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윤소리·배성태 씨는 “행복의 기준은 부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윤소리·배성태 씨는 “행복의 기준은 부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직장인 아내 대신 프리랜서 남편이 살림 
결혼에 대한 환상·편견 없어 일상에 만족

두 사람의 신혼생활은 일반적인 우리나라 가정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남편은 ‘안사람’을 자처한다. 회사에 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작업하는 배 씨는 집안일까지 도맡아 한다. 자연스레 ‘바깥사람’이 된 아내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전형적인 직장인. 남편은 새벽 5시면 아내와 함께 기상해 바쁜 아내의 머리카락을 말려주고, 퇴근시간에 맞춰 따끈한 밥상을 준비해놓는다. 통상적인 부부의 성 역할과는 정반대인 상황에 대해 두 부부는 이상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청소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내는 안 좋아해요. 전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아내는 요리에도 취미가 없죠. 그런 일을 좋아하고 조금 더 시간이 많은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건 당연한 거죠. 저도 때로 귀찮을 때가 없진 않지만 그럴 땐 주말에 아내와 함께 하면 돼요. 주변에선 외려 우리 커플을 부러워하는걸요.”

부부는 4년 전 지인의 소개로 연을 맺었다. 첫눈엔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어디 한눈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인가. 딱히 마음에 드는 구석은 없었지만 천천히 지켜보자고 생각하던 때, 배 씨는 영화관에 함께 가 아무렇지않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여자의 털털한 모습에 꽂히고 말았다. 여자도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 앞에 무장해제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려워지면서 둘은 영원히 함께하기를 결심했다.

그러나 준비된 건 순전히 마음뿐. 여자의 아버지가 우려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배 씨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던 차. 기대에 맞추려 급하게 구한 일자리는 자신의 꿈과는 괴리가 있었고 결국 1년 만에 그만뒀다. 배 씨는 ‘결혼하겠습니다’가 아니라 ‘결혼을 허락해주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무척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부모님의 지원 아래, 은행의 힘을 빌려 살 곳을 마련하겠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복잡한 결혼 절차 속에서 주체가 아니라 부모님의 뜻을 이어주는 전달자밖에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무기력함을 느꼈습니다. 무너지는 자신감을 잡고 ‘잘 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제 목소리가 어찌나 공허하게 들리던지….”

불안해하는 남편을 위로해준 건 씩씩한 아내였다. “예술은 가능성에 투자하는 직업이잖아요. 당장 성과를 기대할 순 없죠. 남편은 분명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제가 벌면 되는 거라 생각했고요. 주변에서는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해와야 한다’, ‘프러포즈 때 명품 가방 하나는 받을 거다’는 둥 괜한 참견을 하는 사람도 있었죠. 전 평소에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해봐선지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았어요. 결혼은 완성된 둘이 만나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잖아요. 경제적으로 부족한 건 함께 벌면서 키워나가면 되는 거죠.”

 

남편 배 씨는 아내와의 신혼생활을 그림으로 그려 에세이집 &lt;구름 껴도 맑음&gt;을 출간했다.
남편 배 씨는 아내와의 신혼생활을 그림으로 그려 에세이집 <구름 껴도 맑음>을 출간했다.

 

 

‘물건’ 대신 ‘기억’으로 신혼집 채우자 다짐 
신혼 일상 그린 에세이로 누리꾼 부러움 한 몸

 

두 사람은 둘만의 방식으로 제주도에서 셀프웨딩 촬영을 하고, 결혼식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평범하게치렀다. 신혼여행은 휴양을 원하는 아내를 위해 태국으로 일주일, 배낭여행을 원하는 남편을 위해 프랑스로 일주일,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는 동시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로 들어서던 날,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집은 텅 비었지만 마음만은 가득 찼어요.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흰 도화지 위를 둘이 함께 그려나갈 수 있다는 게 설레기까지 하더군요. 창밖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채워가며 살자고 다짐했죠. 물건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들을요.”

남편 배 씨의 꿈은 아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 결국 결혼 6개월 만에 아내가 주인공인, 그림을 그려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장인어른도 지인들에게 사위의 책을 자랑하는 또다른 ‘아버지’가 됐다. 두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부터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을 결혼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안 좋은 점은 김치찌개에 든 고기가 너무 빨리 없어지는 것, 일이 바쁜데 자꾸 놀고 싶어지는 것, 요리를 해주겠다고 주방을 다 어지르는 것….

배 씨는 언젠간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그리겠다고 했다. 아내의 2세 계획은 세 명. 부부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금보다 더 값진 긍정의 힘이다.

“결혼을 안 하려거나 출산을 망설이는 이들의 심정도 공감해요. 하지만 사회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면 좋겠어요. 결혼을 하고 세상에 단 한 사람에게만 인정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타인의 시선은 중요한 게 아니더군요. ‘구름 껴도 맑음’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중요한 건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어떤 역경도 가족과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만의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가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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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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